[이춘근칼럼] 카멀라 해리스는 잔 다르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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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7-29 06:31:01

미국 정치가 혼돈의 와중에 있다. 지난 1개월 동안 미국 정치에 대지진이 발생했다고 보아도 될 정도다. 6월27일 있었던 대통령 토론회는 그동안 미국의 주류 언론이 언제라도 건강하고 예리하며 능력 있다고 속였고, 국민 대부분도 그렇게 알고 있었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사실은 치매 증상이 완연한 노인이었다는 사실을 온 세상에 공개했다. 그동안 ‘설마’라고 생각했던 미국 민주당을 배후에서 혹은 꼭대기에서 움직이는 ‘정치적 기계(Political Machine)’라는 보이지 않던 세력은 무자비하게 치매 노인 바이든을 쫓아냈다.

그동안 바이든을 쫓아낼 수밖에 없었던 사건도 있었다. 13일 펜실베이니아 유세 도중 트럼프가 간발의 차이로 암살을 당할 뻔한 사건이다. 지금 수사가 진행 중에 있는 사건이지만 이 사건은 2024 미국 대통령 선거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폭탄이 아닐 수 없다. 만약 현 여당이 이 사건에 개입되어 있거나 혹은 과격한 음모론자의 상상처럼 트럼프 진영의 자작극이거나, 트럼프 암살 음모 사건의 진실은 한편을 파멸로 몰고 갈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 암살 미수사건 이후 이틀 만에 개최된 공화당 전당대회는 트럼프가 공화당을 완벽히 장악했다는 사실을 과시했다. 트럼프 승리를 위해 결정적인 미국의 시골 백인 노동자 세력을 대표하는 약관 36세의 J.D.밴스 상원의원이 부통령 후보로 확정되었고, 공화당 전당대회는 사상 유례없는 단결과 화합의 페스티벌로 끝났다. 대세는 트럼프 당선 쪽으로 흘러갔다.

결국 미국 민주당의 보이지 않는 힘, 자기 당의 대통령도 마음대로 밀어낼 수 있는 그 무지막지한 힘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일찍이 이 같은 워싱턴의 실세 권력을 ‘딥 스테이트(deep state)’라 칭하고, 워싱턴의 축축한 늪에서 서식하는 이 세력을 모조리 제거해 버리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본시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늪지대(Swamp)였다. 이 늪지대에서 기생하며 미국의 국익보다는 자신들의 권력과 사익을 추구하는 세력인 딥 스테이트를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늪 자체를 말려 버리는 것이다. 만약 2024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한다면 딥 스테이트에게는 치명적인 일이 될 것이다. 결국 그들은 바이든으로는 트럼프를 꺾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정말 의리도 없이 바이든을 밀어내고 말았다.

일요일인 21일 후보를 사퇴하는 현직 대통령이 공개적인 기자회견도 없었고, 백악관의 공적인 편지지도 아닌 개인 편지지에 진위조차 의심받는 사인(sign)과 오직 자신의 업적을 자화자찬하는 내용을 간략히 서술한 편지를 트위터(현 X)에 올린 것이 전부다. 그렇게 업적이 훌륭하다면 왜 대통령 후보를 사퇴할까. 바이든은 ‘민주당과 국가를 위해서’라고 석연치 않은 이유를 밝혔다.

대타로 나온 사람이 카멀라 해리스 현 부통령이다. 단 한 명의 대의원도 얻은 기록이 없는 해리스가 8월19일 전당 대회에서 정말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다만 바이든이 사퇴한 바로 다음 날인 22일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고 선언했고, 민주당의 정치 기계는 적극 해리스를 후원한다고 발표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의 발표에 손뼉을 친 민주당원은 없었지만 민주당 수뇌부는 적극 해리스를 띄우기 시작했다.

입소스·로이터 여론조사가 23일 해리스가 트럼프를 “무려” 2%p 앞섰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놀라운 것은 미국 내에서는 조용한데 한국 언론들이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트럼프가 당선되면 큰일 날 듯 마음 졸이고 있었는데, 잔 다르크 같은 여전사 해리스가 나와서 양아치 혹은 또라이 트럼프를 격파할 것처럼 들떠 있다.

미국 정치를 수십 년 동안 관찰해 온 필자는 마침 미국에 체류하면서 최근 미국의 동향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 언론이 흥분한, 해리스가 앞선 결과를 낸 여론조사는 분명히 존재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은 하나가 아니다. 이들 여론조사를 다 살펴보아야 한다.

다음은 미국시간 24일 아침 발표된, 바이든의 사퇴를 고려한 후 행해진 5개의 여론조사 결과다. NPR·PBS 트럼프 +1, Reuter·Ipsos 해리스 +2, Quinnipiac 트럼프 +2, Morning Consult 트럼프 +2, Yahoo News 동률 등이다. 트럼프가 전반적으로 앞서고 있다. 통계보다 더욱 중요한 변수는 호감도(favorability)다. 미국 역사상 30%대의 호감도를 가진 대선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적은 없었다. 해리스의 호감도는 35%(Ipsos·ABC)다. 해리스는 전혀 민주당을 구원할 잔 타르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