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프랑스명소산책] ‘촌놈’ 루소를 매혹시킨 파리 플라트리에르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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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의 지원자 뒤팽 부인의 세련된 살롱이 있던 곳
오늘날 장 자크 루소 거리가 된 역사적 기억의 장소

최인숙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7-17 06:30:53

18세기 유럽의 빛나는 철학자 장 자크 루소. 그는 정규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다. 독학으로 학문을 터득했고 몽테뉴를 열렬히 애독했다. 이런 그가 쓴 ‘인간불평등 기원론’이나 ‘사회계약설’은 프랑스 혁명기는 물론 지금까지도 우리의 정신세계를 뒤흔드는 최고의 서적이다.

루소의 젊은 시절은 좀 특이했다. 대부분의 철학자가 사교계에 드나들며 지적 교류를 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일을 즐겼지만 루소는 이를 주저했다. 그는 세상적인 것과 거리가 멀었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느낌을 그는 항상 갖고 있었다. 수줍음이 많아 대중 앞에서 어색해했고 자신이 빛나지 않는다고 생각해 살롱을 피했다. 그러나 그런 커뮤니티를 경멸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갈망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루소는 결국 파리행을 결심했다. 그는 사랑하는 샤르메트와 바랑 부인을 뒤로하고 상경했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살 때였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지식계에 침투하고자 선택한 길이었다. 지적 성숙기에 들어선 루소에게 예술과 문학의 도시 파리는 한없이 매력적이었다. 이는 루소가 1년 전 파리를 평생 처음 방문 했을 때와는 다른 시각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첫 방문 때 그는 파리를 부정적으로만 봤다. 그러나 이번에는 많은 부분을 찬란한 측면에서 보았다.

루소는 파리 체류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나는 1741년 가을에 현금 15루이(루이 13세의 이름을 딴 당시의 화폐 단위)를 가지고 파리에 도착했다. 보르드 씨가 내게 준 주소에 근거해 나는 소르본 근처의 코리다에 거리에 있는 생깡탱 호텔에 묵으러 갔다. 지저분한 거리에 지저분한 호텔·지저분한 방이었지만 남자들만이 묵는 숙소였다. 그곳엔 그라쎄·보르드·마블리 수도원장, 그리고 콩디악 같은 출중한 문인들이 체류하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순수주의자처럼 행동하는 절름발이 변호사 본네퐁을 알게 됐고 그 덕분에 다니엘 로갱을 만나 친구가 됐다. 로갱은 내게 디드로를 소개했다.”

루소는 파니에 플뢰르나 프로코프와 같은 멋진 카페에 드나들었다. 브로글리 부인·뒤팽 부인이 운영하는 세련된 살롱에 자주 드나들며 당대 유명한 문인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디드로를 만나며 계몽주의 세계에 발을 들이며 백과사전파(볼테르·몽테스키외 등 프랑스 계몽사상가 집단)에 합류했다.

루소의 음악과 글쓰기 재능은 뒤팽 부인과 그녀의 주변인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뒤팽 부인의 친척이자 재정가인 드 프랑퀘유 씨는 루소의 재능을 높이 샀고 큰 관심을 보였다. 루소는 뒤팽 일가와 친하게 지내기 위해 그들이 살고 있는 플라트리에르 거리로 이어지는 베르들레 거리로 이사했다. 뒤팽 부인은 그를 극구 환영했다. 1791년 프랑스 혁명가들은 북쪽의 이 거리와 남쪽의 그르넬 생토노레를 연결해 ‘장 자크 루소 거리’라 명명했다.

한편 루소에게는 볼테르를 만날 기회가 생겼다. 리슐리외 공작으로부터 ‘나바레 공주’의 요약본을 제작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의 우상인 볼테르와의 협업이 필요했다. 루소는 “나는 15년 동안 당신에게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라고 볼테르에게 편지를 썼다. 하지만 국왕의 역사학자로 궁정에서 승승장구하던 볼테르는 루소 따위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공연 며칠 전 루소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조만간 당신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릴 수 있는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 기회는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그러나 볼테르의 예상은 빗나갔다. 1744년 루소는 투옥된 디드로를 방문하던 중 17세기에 창간된 문학 관보인 ‘메르퀴르 드 프랑스(Mercure de France)’를 발견했다. 이 잡지에서 디종 아카데미가 주최하는 대회를 발견하고 참가했다. 루소는 여기서 ‘문명과 미덕의 대립’에 주목하여 상을 받았다.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루소는 그해 결국 볼테르를 만났다. 둘은 지적 교류를 시작했지만 먼 훗날 사이가 크게 틀어져 원수가 되고 만다.

▲ 플라트리에르 거리에 있는 살롱에서 루소를 맞이하는 뒤팽 부인. 위키피디아

1745년 루소는 베네치아로 떠나 대사관에서 1년간 비서로 일했지만 파리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생캉탱 호텔에 머물면서 뒤팽 부인의 개인 비서로 취직해 6년간 일했다. 이때 그는 드 프랑퀘유를 비롯한 금융가들을 만났고 세상의 불평등 구조를 파악했다. 이 경험이야말로 그의 사상적 방향을 확고히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듯하다. 그는 또한 페미니스트 계몽주의자인 뒤팽 부인을 도와 페미니즘적인 작품을 썼다. 이 작품의 제목은 ‘남성과 여성의 평등에 관하여’다.

루소가 1745년 친구 로갱에게 보낸 편지에서 “저작을 완성하기 위해 생캉탱 호텔에 칩거하기로 결정했다. 이 호텔은 뤽상부르에서 멀지 않은 한적한 지역에 있어 시끄러운 생토노레 거리보다 일하기에 더 편안하다”고 말했다. 이 호텔에서 루소는 생캉탱 호텔의 세탁 관리사인 22살의 처녀 테레즈 르 바쇠르(Thérèse Le Vasseur)를 만났다. 그녀는 매우 수줍음이 많았다. 이 점이 자신을 많이 닮았다고 루소는 느꼈다. 이 공통점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을 빠르게 연결했다. 그녀는 루소가 비참함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하고 진정한 위안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