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문의 영화세상] 맹신적 추종자들의 미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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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7-11 06:31:10

미국 영화 ‘더 팬’(1996)은 스포츠 스타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캐릭터의 엽기 행각을 그린다. 칼 외판원 생활을 하는 길 레나드(로버트 드 니로)는 괴팍스러운 성격과 부진한 실적으로 해고당한다.

그가 인생에서 위안받는 일은 메이저 리그에서 주목받는 바비 레이번(웨슬리 스나입스)을 보는 일이다. 그가 슬럼프에 빠지자 라이벌 선수 때문이라고 여기고 살해까지 한다. 그런데도 바비 레이븐이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자 배신감을 느낀 길은 바비의 아들을 납치하고 그의 목숨까지 노리던 중 끝내 운동장에서 난동을 부리다가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다.

픽션인 탓에 영화적인 과장이 섞여 있다 하더라도 평범하던 지지자가 시간이 흐르고 자신의 처지가 달라지게 되자 아무도 못 말리는 광신적인 팬으로 둔갑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그러나 영화 속 내용이 충격적이기는 하지만 요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팬덤’의 극성에 비하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 국민적 열광이 특정 개인을 향한 맹목적 추종으로 변질된 것은 한국영화 열풍을 일으킨 ‘쉬리’(1999)와 2002년의 한·일월드컵 4강 선풍 이후부터다. 당시만 해도 한국영화는 보아야 할 가치도 이유도 없는 저급한 쓰레기 취급을 받았고 외국영화는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맹목적 과신이 넘쳤다.

관객을 위해 영화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영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것이 ‘쉬리’를 통해 비로소 ‘영화의 주인은 관객’이라는 소비자 선언을 한 것이다. 한국영화를 보는 것이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자부심은 넘쳤다. ‘쉬리’에서 경험한 대중성의 집단 경험은 2002년 한일월드컵 ‘광장의 세례’를 통해 폭발했다. 시합이 벌어질 때마다 온 나라가 흥분의 도가니로 바뀌고 열광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전만 하더라도 여러 사람이 모이는 것은 조심스러웠다. 오래전부터 시작된 눈치 보기는 일상이 되다시피 했고 사람이 모이는 것은 될 수 있으면 피하려 했다. 말조차 조심스러웠고 가능하면 목소리를 낮추었다. 2002년의 월드컵은 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수십만·수백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큰 소리로 환호를 해도 조용히 하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되었다. 국민은 처음으로 감시와 억압·통제에서 해방되는 자유로움을 넘치도록 맛보았다.

이때부터 대중은 통제할 수 없는 ‘군중’으로 변했고 특정인을 향한 팬덤을 만들기 시작헸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이나 문재인 시절의 ‘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대깨문)·이재명을 지지하는 ‘개혁의 딸’(개딸)은 지지자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광신 집단의 상징처럼 되었다. 특정인을 무조건 지지·추종하고 비판자에 대해서는 배신자로 낙인찍기와 겁박을 자행한다. 정확한 수와 연령대는 밝혀진 적이 없지만 이들은 조폭의 행동대처럼 움직이며 한국의 정치에 위세를 부린다.

추종자들과는 별개로 야당 국회의원이 170명에 이르고 입장을 같이하는 다른 야당들을 합치면 국회의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한다. 그 힘을 앞세워 법리에도 맞지 않는 입법을 밀어붙이고 문제가 되어도 모른 척한다. 오로지 숫자만을 내세워 막무가내로 입법을 무기화하고 행정부와 사법부를 방해하거나 겁박하고 있다.

추종자들이 맹목적인 광신도가 되는 것도 보기 드문 일이지만 국회의원들이 최소한의 논리와 판단 없이 특정인의 방탄을 위한 들러리를 자처하는 것은 더욱 이해가 안 된다. 한두 명이 경우 없는 행동을 하는 사례는 있었을지라도 야당 의원 전체가 줄을 서서 충성 경쟁을 하는 일은 민주사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변호사·판사·검사·언론인 등 상식과 논리를 강조하던 인물이라 하더라도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순간 돌변하여 억지와 비논리를 주문처럼 외며 주인이 던져 주는 먹이에 꼬리를 흔들며 아양을 떠는 개 노릇을 한다.

어떤 비판도, 다른 목소리도 없다. 중국 문화혁명 시대의 홍위병 무리를 역사상 가장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광신도로 기억하지만 지금의 추종자나 야당 국회의원들은 그보다 훨씬 심하다. 단순히 자기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이 아니라 아예 대한민국의 입법·행정·사법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있다.

각종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가 검찰을 조롱하고 겁박하는 일이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다. 나만 살 수 있다면 나라가 망하든 법치가 깨지든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태도다. 이렇게 막무가내인 경우도 처음 보고 온 나라가 몇 명의 도둑 앞에서 속절없이 희롱당하는 경우도 처음 본다. 도둑의 위협과 분탕질로부터 국민의 자존심과 정의를 세우는 일은 국가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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