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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가 본 여행지 중 어디가 가장 좋았냐고 사람들이 묻곤 한다. 여행 관련 글을 오래 쓴 이력 때문일 것이다. 좋다는 게 여러 가지를 의미하겠지만 확실한 것은 누구에게나 좋은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홍콩에 자주 다니면서 홍콩과 관련된 책도 쓰게 됐다. 그러다 보니 홍콩에 정이 많이 들어서 홍콩을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럴 때 좋은 곳이란 ‘정든 곳’이 된다.
만약 내가 홍콩에 정들 틈이 없었다면 홍콩이 내게 좋은 장소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물론 홍콩은 야경이 아름다운 곳이고 미식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 맛있는 음식이나 아름다운 경치 때문에 사랑의 포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진 앱을 뒤지는데 지난겨울 방문했던 충북 단양이 화면에 떠올랐다. 남한강이 거짓말처럼 꽁꽁 얼어 있었다. 방대한 지역이 얼음에 덮인 것을 보니 여름 더위가 저만치 물러나는 느낌이었다. 그때가 단양을 두 번째 방문했을 때였다.
사실 첫 방문은 ‘단양휴게소’ 언덕에 있는 신라적성비를 보기 위해 잠깐 들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 고속도로 휴게소에 고대 신라의 유적이 있다는 사실에 단양이 참 신선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몹시 추운 날 단양 여행을 떠난 것이다. 그 겨울 나는 꽁꽁 언 남한강을 따라 잔도를 걸었다. 깎아지른 벼랑에 덧댄 잔도는 그동안 눈으로 보기 힘들었던 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저 혼자 생겨나 조용히 나이 먹어 가던 벼랑과 암석을 가까이서 보는 행운이 나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분명 강바람이 셌을 텐데 추위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의외의 경험’ 혹은 ‘뜻밖의 발견’은 내가 여행에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그런 것은 순전히 우연히 만나지는 것이다. 누구 말 듣고 좋다고 해서 갔는데 신통치 않아 실망한 경우가 다반사였던 걸 보면 개인마다 다른 방식으로 찾아오는 우연이라는 게 더욱 소중함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없다면 여행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나쁜 여행은 없다는 말이 있다. 여행에서 무엇을 만나든 그것은 경험이고 추억이고 교훈이다. 흔히 인생은 여행이라는 말을 한다. 인생도 여행처럼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다. 내게 찾아온 우연을 고유한 경험으로 여기고 즐긴다면 나쁜 인생은 존재할 수 없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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