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문의 영화세상] 윤석열 대통령의 멈춘 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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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7-04 06:31:00

살인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 주인공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 사람을 죽인 적이 없으며 누명을 썼을 뿐이라고. 하지만 재판관은 ‘너는 살인을 하지 않았지만 시간을 낭비한 죄로 유죄’라는 판결을 내린다. 주인공은 그 말에는 반박하지 못하고 동의한다. 영화 ‘빠삐용’(1973) 중 이 장면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살인죄로 기소된 인물에게 다른 죄목을 붙여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이 법리적으로 맞는 것인지는 의문이지만 ‘시간을 낭비한 죄로 유죄’라는 판결은 인생의 가르침 같았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시 국민이 무엇보다 기대한 것은 법치의 회복이었다. 국정을 무너뜨린 문재인이나 남편의 위세를 빌어 호가호위한 김정숙의 온갖 기행은 말할 것도 없고 이재명이나 조국의 범죄에 대해서도 추상같이 단죄하는 모습을 기대했다. 황운하·최강욱·윤미향처럼 죄를 짓고도 뻔뻔스럽게 고개를 쳐들고 다니는 모습도 국민적 분노를 자아냈다.

최강욱은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했지만 임기를 거의 다 채운 뒤였다. 이재명은 숱한 전과와 범죄혐의에도 거대 야당의 대표가 되어 입법 폭주를 하고 행정부에 대한 방해와 사법부 겁박을 자행하며 대한민국을 유린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노조가 장악한 방송 구조도 그대로였고 임명된 기관장이 그대로 자리에 버티고 있는 모습도 한심했다. 취임 2주년을 넘기도록 무엇 하나 변한 것이 없으니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문재인은 잘한 것 없지만 적폐청산 한다며 온갖 명분을 붙여 적대 세력은 그 자리에서 찍어 냈고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부여된 고유 권한이라며 눈치 보지 않고 마구 휘둘렀다. 그러나 윤석열정부는 어느 것 하나 매듭짓지 못했다. 새로운 검찰총장이 임명되었을 때만 해도 뭔가 달라지나 싶었지만 임기가 다 되도록 흐지부지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신속한 재판을 약속했다. 인력이 모자라면 부장판사도 재판에 투입하라고 다그쳤지만 역시 말로만 그쳤을 뿐 달라진 것은 없었다. 정치인 재판은 지지부진 시간 끌기는 마찬가지여서 대법원장이 바뀌어도 예전과 다름없이 그대로였다.

윤 정부는 경제·외교·국방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고 노조 활동 정상화·탈원전 정책 회복·의대정원 확대 같은 치적을 이루었는데도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몸으로 느끼는 체감물가와 범법자들을 제때 단죄하지 못한 우유부단함이 여론을 돌아서게 만들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대통령 취임사에서 밝힌 것처럼 법치가 살아 있는 세상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범법자들이 검찰이나 재판부를 조롱하며 고개를 쳐들며 활개치고 다니는 세상이 되었다.

얼마 전 끝난 총선에서 참패한 것은 흐지부지한 단죄의 집약된 결과였다. 검찰은 ‘검찰공화국’이란 말을 들어도 똑 부러진 반격을 하지 못했다. 무능한 건가,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건가, 윤석열정부가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여기고 제멋대로 하는 건가. 총체적으로 무능했고 온갖 비난과 조롱을 받아도 침묵할 뿐이었다.

재판부의 지지부진한 봐주기를 윤 정부의 책임만으로 돌릴 수 없다 하더라도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역할을 했다. 취임 1주년을 넘길 때만 해도 뭔가 때를 기다리겠거니 하면서 치미는 분노를 참았지만 2주년을 넘기도록 무엇 하나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을 보고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야당에게 지난번 총선보다 더 많은 의석을 내주어 거대 야당이 마구잡이로 위세를 부리고 있는 중이다. 법이고 규정이고 아랑곳하지 않고 여론도 눈치 보지 않는다.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가고 싶은 방향이면 제한 없이 가고 있을 뿐이다. 여당은 이 같은 막무가내를 막을 힘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그나마 똘똘 뭉쳐서 한목소리를 내지도 않는다. 여차 하면 갈라설 판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다가오는 대선에서 정권을 지킨다는 보장도 없다. 사실상 국정을 야당에게 내준 꼴이다. 그러고는 야당의 눈치를 보며 평정을 되찾기를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

이재명은 언젠가 어느 인터뷰에서 권력은 잔인하게 써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실천하기라도 하듯 여론 눈치 보지 않고 당을 장악하고 1인 독재 집단처럼 조종하고 있다. 윤 정부를 공격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방탄을 겨냥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윤 정부는 단호한 법치를 되찾아야 한다. 정권의 명운을 건 일이다. 앞으로의 행보가 지금과 같다면 민심은 더욱 멀어질 것이다. 반대파야 어떻게 하든 시비를 걸겠지만 지지자들이 더 이상 이탈하지 않도록 단속해야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법치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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