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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부터 게재를 시작해 금년 6월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 온 대장정이었다.
2000여 년 전, 이 땅에는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이 있었다. 삼국의 건국과 소멸 그리고 발해 건국까지 800년 역사의 대서사시 ‘우리나라 삼국지’가 345회를 끝으로 연재를 마감했다. 부록까지 포함하면 책으로 11권에 달하는 분량이다.
이에 저자인 임동주 전 서울대 겸임교수에게 집필 의도와 과정 그리고 대장정을 마무리한 소회를 물었다.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 우리나라 삼국지를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초등학교 시절 월탄 박종화가 번역한 삼국지를 접하고 너무 재밌어서 며칠 만에 독파했다. 하지만 곧 내가 읽은 책은 우리나라 삼국지가 아니고 중국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느낀 실망 그리고 자괴감은 이루 필설로 형용할 수 없었다.
온 책방을 뒤져 우리나라 삼국시대를 다룬 책을 찾아보았다. 시중에 나온 책들이란 게 하나같이 유치한 전개에 중국 삼국지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내용이 빈약했다. 그리고 왜들 그렇게 사대주의에 입각해서 글을 썼는지 나 자신이 3류 나라 사람이고 식민지 종자 같아 초라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 뒤로 삼국시대는 나에게 일종의 멍에가 되었다. 나라도 우리나라 삼국지를 집필해 우리나라에도 이처럼 훌륭한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우리나라 삼국지’의 정확한 무대와 시기가 궁금하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대흥안령산맥 아래의 드넓은 만주 땅과 하바롭스크를 포함한 연해주 일대가 우리나라 삼국의 무대였다. 시기는 기원전 37년 주몽이 부여를 탈출해 고구려를 창업할 때부터 서기 668년 고구려가 망하고 대조영이 고구려를 이어 발해를 창업해 본격적인 남북국시대로 접어들던 서기 720년까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다.
세계화 시대에 애국심을 들먹이는 것을 구태의연하다고 여기는 이도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당당하고 훌륭한 역사가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세계가 글로벌화될수록 우리는 우리의 뿌리를 더 잘 알아야 한다.
국적 없는 교육은 우리의 근간을 흩트려 놓는다. 비근한 예로 필리핀은 1950년대 아시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였지만 지금은 나라의 처녀들을 외국 가정부로 수출하는 빈한한 나라가 되었다. 이게 다 공교육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탓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안 보내니 애국심을 고취할 만한 계기가 없었다.
이에 반해 일본은 애국애족을 교육의 바탕으로 삼았기에 막강한 경제력을 거머쥘 수 있었다. 중국도 국산품을 애용하게 하는 등 전 국민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킨 결과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우리나라의 경우 애국애족을 교육의 근간으로 삼았을 당시만 해도 나라가 눈부시게 발전했다. 하지만 내·외부의 압력과 견제로 애국 교육을 소홀히 한 결과 저 혼자 잘 먹고 잘살자고 기업의 기술을 경쟁국에 몰래 팔아먹는 매국노들이 판치는 기막힌 나라가 돼 버리고 말았다.
지금은 성장 동력이 떨어져 향후 10~20년도 내다볼 수 없다. 백제·고구려가 망했을 때 백성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전쟁포로가 되어 당나라로 끌려가 노비가 되지 않았는가. 나라가 망하면 국민은 존재할 수 없다.
교수님 말씀대로 요즘 애국심이 너무 희미해졌다. ‘우리나라 삼국지’에서는 어떠한가
그래서 애국심을 고취시킬 목적으로 실제 사료에도 등장하는 신라의 장인 구진천(仇珍川)을 크게 부각시켰다. 구진천은 신라 문무왕 시절 기계식 활인 쇠뇌를 만드는 기술자였다. 당시 신라의 쇠뇌는 100보 정도밖에 안 나가는 당나라 쇠뇌에 비해 유효 사거리가 1000보나 될 정도로 성능이 훨씬 좋았다.
이에 당나라 고종은 구진천을 당나라로 불러 돈과 여자를 내리면서 회유하려 했다. 하지만 구진천은 온갖 회유와 협박에도 기술을 이전해 주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애국자가 아니겠는가.
800년 대하역사소설인 만큼 자료의 양이 방대했을 것 같다
우선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등 현존하는 역사서에 기초를 두었다. 이 외에 ‘수서’ ‘신당서’ ‘구당서’ ‘위지동이전’ ‘통감’ ‘일본서기’ 등을 참조하고 수백 종의 논문을 섭렵했다. 이것들을 바탕으로 줄거리를 짠 후에 상상력을 동원해 살을 붙여 글을 만들었다. 역사(History=Human story)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중국 삼국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가 우리나라 역사도 모른 채 중국 것들을 읽으면 우리나라를 스스로 비하하게 된다. 나관중은 존화(尊華)에 바탕을 두고 책을 만들었으므로 중국 삼국지를 읽다 보면 절로 모화사상(慕華思想)과 사대주의(事大主義)에 젖게 된다.
중국 중심의 세계에 익숙해지면 우리나라는 변방이라는 자기비하적인 사고에 빠지게 된다.중국 삼국지뿐만이 아니다, 조선의 유명한 유학자 기대승이 선조께 아뢰기를 중국 삼국지는 신뢰할 수 없는 자가 쓴 나쁜 책이라 했다.
유학자 기대승과 선조의 얘기를 좀 더 상세하게 이야기해 달라
서기 1569년의 일이다. 선조가 신하들에게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장비의 장판교 사건이 왜 정사(正史)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기대승이 선조에게 아뢴 말이 조선왕조실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삼국지연의’는 무뢰(無賴·신뢰할 수 없는)한 자가 잡된 말을 모아 진짜 옛이야기처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잡되고 경박하고 무익할 뿐 아니라 의리를 크게 해칩니다. (…) 임금님께서는 이 책의 무망(無望·나쁜)함을 아시고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중국 삼국지에 대한 비판적인 문구를 소개한 것은 과연 이 소설이 우리에게 재미 이외에 무엇을 주었는가를 생각해 보자는 뜻에서다. 옛날 어른들은 젊은 날에 ‘수호지’를 읽지 말고 늙어서는 ‘중국 삼국지’를 읽지 말라고 했다.
젊은이가 남의 재물과 목숨을 빼앗는 도적들의 이야기(수호지)를 읽으면 광폭해지고, 늙은이가 남을 속이는 계략이 많은 책(중국 삼국지)을 읽으면 잔머리만 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겉으로는 의리와 충절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권력 다툼과 잔혹한 살육을 일삼는 시정잡배들이다.
나관중이 소설에서 그렇게 치켜세웠던 제갈공명이 한 일이 과연 무엇인가. 좌원(坐原) 대첩을 승리로 이끈 고구려 국상 명림답부와 비교라도 할 수 있는가. 그들은 결국 떠돌이 무사 집단에 다름 아니다.
중국의 위·오·촉 삼국과 우리의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이 동시대에 존재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어떠했나.
위·오·촉의 삼국시대과 우리나라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대는 시간상으로 일부 겹친다. 중국의 삼국시대는 후한 말 태평도의 봉기가 있었던 서기 184년부터 시원(始原)을 잡더라도 중요 사건은 200년 조조와 원소의 관도대전, 208년 조조와 손권의 군대가 맞붙은 적벽대전, 촉의 건국의 발단이 된 219년 한중대전까지 모두 20년 사이에 일어났다.
그리고 촉나라가 약화된 계기가 되었던 222년 이릉전투, 263년 촉의 멸망과 265년 위의 멸망 그리고 280년 오나라의 멸망까지 계산에 넣더라도 100년도 채 안 되는 보잘 것 없는 역사다.
그 당시 신라는 벌휴·내해·조분·점해·미추 이사금이 다스렸다. 석우로 등이 활약했던 석(昔)씨 세력의 전성기였지만 곧이어 김(金)씨가 등장한다. 백제는 초고왕과 구수왕·사반왕과 고이왕의 시대였다.
고이왕 시기 백제는 나라를 정비하고 적극적으로 해외로 진출을 시작하고 있었다. 고구려는 고국천왕과 산상왕·동천왕·중천왕·서천왕 시기다. 이때 고국천왕이 을파소를 등용하여 독자적인 진대법(賑貸法)을 실시했고 동천왕은 동양에서는 최초로 철기군을 조직해 위나라 관구검과 격돌했다.
또 중천왕은 재차 침입한 위나라 군대를 물리쳤다. 우리나라 삼국시대는 위·오·촉 삼국시대에 비해 소재가 부족하지도 않고 재미와 교훈이 모자라지도 않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대는 우리 역사를 통틀어 민족 지혜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삼국지에는 허구가 많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삼국지’는 얼마가 진짜이고 얼마가 허구인가
중국 삼국지는 90%가 새빨간 거짓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삼국지’는 90%가 진짜이고 10% 정도만 픽션이다. 그만큼 철저한 고증에 입각해서 쓴 책이다. 부풀리지도 않았다. 있는 것을 그대로 기술했다.
‘우리나라 삼국지’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굴했거나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논란의 도마에 자주 오르내리던 대륙백제(大陸百濟)와 왜백제(倭百濟)를 확실히 서술했다. 사람들이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정확한 사료까지 첨가해 고증했다. 대륙백제는 중국 역사책인 ‘남제서’에 자세히 나오고 왜백제는 인물화상경에도 뚜렷하게 나오는 것인데 굳이 이를 부정할 필요가 없다.
또한 우리나라 교과서에는 혜초를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천축국(인도)을 처음 방문한 스님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사실 백제의 스님 ‘겸익’이 그보다 200년 앞선 서기 512∼526년에 천축국을 다녀왔다. 이 외에도 새로운 사실이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역사 사대주의를 경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호도된 사실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고구려 중천왕 때 관나부인을 ‘강물’에 빠뜨린 것으로 묘사하는 글들이 많다. 그러나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왕이 관나부인을 가죽부대에 넣어 서해에 빠뜨렸다’(王以貫那夫人置革囊,投之西海)는 기록이 분명히 나온다. 정사(正史)에도 나오는 사실인 ‘바다’가 ‘강’으로 왜곡된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낙랑군이 평안도에서 길을 막고 있었으므로 고구려 궁인들이 국내성에서 서해까지 가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 사람들이 내용을 자의적으로 왜곡한 것에 가깝다. 이 또한 사대주의라고 볼 수 있다.
또 한 예로 고구려가 중국에 조공(朝貢)을 했다고 믿는 것이다. 고구려는 모본왕 때부터 서쪽으로 국경을 넓혀 왔으며 계속해서 중국의 여러 나라들과 수많은 전쟁을 치렀다.
예를 들어 수나라는 고구려와 네 차례 전쟁에서 모두 패해 결국 멸망에 이르렀고 용병의 달인으로 일컬어지는 당 태종도 고구려와 수 차례 크게 싸워 모두 패했다. 고구려 800년 동안 중국의 35개국이 명멸(明滅)했는데 과연 고구려가 중국에 조공을 바칠 겨를이 있었을까? 이 또한 사대주의와 식민사관의 폐해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저들은 고구려나 고조선을 자기네 역사에 편입시키면서 우리 역사의 머리를 잘라 내고 있다. 과거가 현재를 만들고 현재가 미래를 만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간도를 비롯한 만주 땅의 기득권을 두고 한·중 간에 분쟁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동북공정은 이에 대한 준비 작업으로 볼 수 있다.
동북공정에 대처하려면 우선 우리 국민이 먼저 우리나라 역사를 알아야 한다. 애국애족 교육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정신 무장을 하고 있으면 누구도 우리를 어쩌지 못한다. 저들이 계속해서 고구려가 중국사에 속한 나라라고 떠드니까 심지어 한국에서도 ‘정말 고구려가 중국인가?’ 생각하는 한심한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이를 경계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김유신의 삼국통일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삼국통일이라는 말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한국 침략과 지배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1925년 6월 조선사 편찬위원회를 만들고부터 생겨났다. 그 이전까지는 삼국통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통일이라 함은 각기 다른 영토와 국민을 하나로 병합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구려가 멸망하자 당나라는 대동강 이남의 땅을 신라에 주겠다는 분할 약속마저 지키지 않았다. 신라는 간신히 임진강 이하 약 3만㎢를 확보했을 뿐이다.
당시 우리나라의 영토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대흥안령산맥 아래의 드넓은 만주 땅과 하바롭스크를 포함한 연해주 일대를 포함한다. 얼추 120만㎢에 달하는 규모다.
120만㎢ 중 117만㎢을 잃어버렸는데 통일이란 말이 가당키나 한가. 이병도가 주축이 되어 편찬한 조선사에서 식민사학자들은 한국의 역사는 조그만 반도의 역사라고 강조하여 바다와 대륙의 공간을 한국사에서 잘라 냈다.
일본의 식민사관은 발해사마저 한국사에서 잘라 내 우리의 옛 땅인 만주를 외부 압력이 투하되는 강압의 공간으로 한국인들이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만약 우리가 식민사관에 빠져 김유신이 삼국을 통일했다고 계속 주장한다면 그야말로 한강 이북까지 중국 땅이었다고 우기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도와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광복을 맞이한 지 어언 80년이 흘렀다. 제발 지금부터라도 식민사관에서 벗어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우리의 주체성을 지켜야 한다.
일본이 우리에게 식민사관을 강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뻔하지 않은가. 우리나라 민족을 열등한 민족으로 만들어야 일본제국의 지배를 받는 게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일제는 우리에겐 식민사관을 강요하면서 자국민에겐 황국사관(皇國史觀)을 가르쳤다.
일본은 천신(天神)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의 후손인 신무천황이 나라를 세운 이후로 만세일통(萬歲一統)의 천황가가 다스리는 신의 나라라고 강조한 것이다.
신의 선택을 받고 일본에 태어난 일본인들은 다른 아시아 사람들과는 다르며 서양에 대항하여 아시아를 구할 사명이 있는 자들이라고 가르쳤다. 일제는 역사 교육을 통해 일본인은 자부심 넘치는 주인으로, 조선인은 열등감에 찌들은 노예로서의 삶을 수긍하며 살도록 만들려고 했다. 역사 교육의 효과가 얼마나 대단하고 무서운지 우리는 똑똑히 알아 두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역사는 현재를 비춰 주는 거울이다. 우리가 우리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것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아들과 딸을 위해서 나아가 우리의 손자를 위해서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소홀히 하면 우리의 자손은 우리를 원망할 것이다. 그때 당신들은 무엇을 했냐고….
▲ 임동주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수의대를 졸업한 뒤 동 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주)마야무역 대표로 있다. 저서로 ‘우리나라 삼국지’를 비롯해 ‘주몽’ ‘을파소’ ‘을지문덕’ ‘연개소문’ ‘인류 역사를 바꾼 동물과 수의학’ 등 총 50여 권을 상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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