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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원래 노래였다. 훗날 고도의 정형성을 갖추고 클래식화한 이후에도 근대사회 이전 시란 선율에 맞춰 부르거나 읊조리는 것이지 눈으로 읽는 게 아니었다. 동북아에서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한자 詩의 구성 요소인 ‘말씀 언(言)’ ‘절 사(寺)’는 각각 기원전 11세기 것으로 추정된 갑골문에 등장하지만, 言·寺가 하나의 글자를 이룬 것은 거기서 수백 년 지난 전국시대 말기(BC2~3세기)다. 혀의 상형 위에 뭔가 생겨난 모습을 포착해 言자로 발전했으며, ‘사당 묘(廟)’자 출현 이후 불교 사원의 의미로 정착한 寺는 제례 공간을 뜻했다.
요약하자면 제사를 올릴 때 인간의 입말을 통해 전달된 것들, 절대자나 저승과의 소통에 필요한 의식용 노랫말이 한자문화권 시의 원형인 셈이다. 반면 서구에서 시(poem)는 그리스·라틴 어원 ‘만들다·창조하다’에서 유래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Poetics)은 문자로 된 모든 작품, 심지어 오늘날 영화·드라마 서사 장르에도 적용 가능한 주장이자 예술 보편, 창조적 활동 전반의 논의라고 할 수 있다.
시, 하면 역시 중국이다. 하나하나 독립된 음·뜻을 가진 한자의 특성이 리듬에 맞는 글자수의 형식을 발전시켰다. 오언절구니 칠언율시니 하는 것들이다. 4~5세기 서역(인도 북부 및 중앙아시아) 문물이 집중 전수된 후 당나라 들어 시 형식은 오언·칠언으로 굳어졌고 방대한 양의 작품이 생산된다.
그러나 중원 지역 주민들의 원래 박자감이 4·4조였음을 BC5세기 노래 모음집인 시경(詩經)과 무수한 네 글자짜리 고사성어에서 알 수 있다. 수천 편들 가운데 야한 남녀상열지사 등이 삭제되고 건전가요풍의 것들만 시경으로 전해진다.
‘시300’(총305수)이라 불리던 유행가·공식행사용(음악) 가사모음집에 경전의 ‘경’을 붙여 떠받든 예를 인류사에서 달리 찾기 어렵다. 이는 공자가 편집한 것이라고 믿어졌기 때문이다. 전쟁의 시대엔 인기 없던 공자가 통일제국 이후 국가이념의 상징이 됐고 12세기 이후엔 철학(주자학)의 원조로 자리 잡는다.
그런 역사 속에서 꾸준히 중시된 게 시였다. 고급관리 등용문의 마지막 단계가 황제 앞에서 일정한 주제·소재 및 운(韻·rhyme·각 구 마지막 글자 음)에 따라 즉흥시를 짓는 일이었다. 20세기 초 과거제 폐지 이전까지 1000여 년간 지속된 전통이다. 이는 시를 알아야 민심이 파악되고 그게 정치의 기본이라는 시경의 가치관에 기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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