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석의 도쿄타워] 일본인이 죽음을 대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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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석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4-29 06:31:10

“어떻게 늙어 가야 하는지를 아는 것은 슬기의 걸작이요, 삶이라는 위대한 예술에서 가장 어려운 장이다.” 스위스계 프랑스 작가 앙리 프레데리크 아미엘의 말이다.

우리는 어떻게 늙어 가야 하는지 모르고 결국 삶과의 이별이라는 죽음을 맞이한다. 저승에 이르는 길엔 다양한 죽음이 있듯이 죽음을 다루는 장례의 모습에도 다양한 문화가 담겨 있음을 알게 된다. 일본에 영주하면서 놀라는 것 중 한 가지가 ‘일본인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이다.

일본은 자연 재해가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나라다. 쓰나미도 잦으나 지진은 전 세계의 22~23%가 일본에서 발생한다. 오늘날의 선진국 일본은 숱한 쓰나미와 지진에서 살아남은 강한 민족이다. 한민족보다 잦은 자연재해로부터 죽음을 경험해서일까. 슬픔을 대하는 방식이 많이도 다르다.

세계적 도시인 도쿄 주택가의 작은 공동묘지(묘비)는 어느 누구도 흉물이라며 배척하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다. 화장장도 주택가 가까운데 있는 경우도 많다. 한국은 가끔 장례식장이 주택가 주변에 들어서면 주민들이 아파트 가격이 떨어진다고 반대 운동을 하는 것이 뉴스가 되기도 한다.

일본인은 기쁨도 과하게 표현하지 않고 슬픔도 최대한 절제하는 민족이다. 장례식은 특정한 종교를 떠나 대부분 불교식으로 치르는 게 일반적이다. ‘태어날 때는 전통종교 신도(神道) 건물인 신사(神社)를 찾아가고, 결혼할 때는 교회나 성당을 찾으며 죽은 후에는 절로 간다’는 말이 일본인의 종교관을 잘 반영한다.

일본에서 결혼식이 처음 교회에서 열리게 된 메이지 시대였고, 신사에서도 열리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고도경제성장기 때의 일이다. 전문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중류층임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집안과 집안이 아닌 개인과 개인의 애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회식이 시간과 경비면에서도 더 인기를 얻게 되었다. 최근에는 결혼식 자체를 하지 않는 ‘나시혼(無し婚)’이 증가하고 있다.

일본은 불교식 장례식장 안에서 큰 소리로 운다든가 하는 소란스러운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눈물을 참고 조용히 고인과의 인연과 추억을 생각하며 예의 절차에 순응할 뿐이다. 일반적으로 신사는 현실 세계의 욕구나 희망을 추구하는 장소로, 절은 사후 세계의 희망을 추구하는 장소로 인식한다.

일본의 불교는 백제로부터 소가 씨가 귀족과의 전쟁을 불사하며 6세기 중반에 도입했다. 그 후 쇠퇴 시기도 겪었으나 17세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시대부터 불교의 대중화가 크게 이루어졌다. 불교는 신도가 갖지 못한 체계적인 사상으로 신불습합(神仏習合)이 된 후에 일본 신앙의 주류 사상이 되었다.

▲ 일본의 화장식에서 유족이 유골을 젓가락으로 수습하고 있는 모습. 필자 제공

일본의 장례식은 마중＞안치＞입관＞오쯔야(お通夜)＞고별식＞화장 순이다. 오쯔야는 고인이 사망한 날에 함께 밤을 새는 행사다. 가족과 친척·친구만이 모여 고인 곁에서 식사를 하며 밤을 지샌다. 고별식은 다음 날이나 다다음 날 행해지는 것으로 일반 조문객이 참석한다. 고별식에 참석한 사람은 분향이나 헌화를 하고 유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

화장 후 옛날에는 7일마다 공양을 했지만 오늘날에는 초이레(7일)·35일·49일 등 세 차례 공양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후 1년·7년 등 일정한 기간마다 죽은 사람에게 공양을 하고, 사후 33년이나 50년이 경과하면 비로소 조상신이 되어 선조 대열에 낄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일본인들의 생각이다.

한국에서도 화장이 일반화되어 가는 추세지만 일본에서 토장은 오래전부터 거의 없다. 화장 후 뼈는 젓가락으로 집어서 통에 넣어 집으로 가져와 보관하기도 한다. 일본은 임종 후 24시간 내에는 화장을 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상복은 넥타이와 함께 남녀 모두 검은색으로 통일되어 있다.

조의금은 일반적으로 결혼식 축의금보다는 적게 준비한다. 많으면 오히려 조금 불편해 하기도 한다. 이는 돌아갈 때 ‘고덴가에시(부의에 대한 답례)’ 금액 설정 때문이다. 일본의 문화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 신세진 부분을 오래 간직하지 않고 반드시 갚는 것이다. 이쪽이 어떤 선물을 하면 반드시 며칠 내로 받는 쪽이 부담스럽지 않도록 비슷한 금액으로 배려의 선물이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한국의 정(情)적인 문화에서 돌아오는 답례가 더 많든 적든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모습과 크게 다르다.

조의금은 지인의 경우 5000~1만 엔 정도가 일반적이다. 친한 가족은 10만 엔 정도를 내기도 한다. 봉투는 축의금이나 조의금 용으로 특별히 디자인된 것을 사용한다. 조의금 봉투는 검소한 디자인이나 축의금은 큰 금액일수록 화려한 장식이 붙는다. 장례 비용은 아주 저렴한 방식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약 200만 엔 전후다. 이렇게 일본인의 죽음을 대하는 의식은 슬픔보다는 삶의 연속이라는 개념을 기본으로 편안하게 진행된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오 톨스토이는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 준비는 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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