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이의 난세치세(亂世治世)] 국혼 정립이 ‘통일 한국’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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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이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3-25 06:31:10

▲ 박정이 (예)육군대장·밀리테크협회 회장·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

일제시대 역사학자이며 독립운동가였던 백암 박은식 선생은 “사람이 혼이 없으면 죽은 것과 같고, 국민에게 혼이 없으면 나라가 망하는 것은 정해진 이치다. 나라를 빼앗겼어도 국혼을 가지고 있다면 능히 나라를 회복할 수 있으며, 국혼 또는 민족혼은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하면서 “국사(國史)가 망하지 않으면 국혼(國魂)은 살아 있으므로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고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혼이란 국가가 가져야 할 정신, 즉 국가의 혼이다. 국혼이 있어야 나라가 살아 움직일 수 있고, 국혼이 없으면 그 나라는 죽은 것이다. 물론 국혼이 있어도 올바른 국혼이어야 한다. 그래서 국가는 올바른 국혼을 구비하려 노력해야 하고 노력해 왔다. 국가의 국혼은 헌법 정신과 역사적 전통에 의해 형성되며 국정에 반영된다. 헌법에 담긴 국혼은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고 고유한 역사는 역사적 ‘정통성’의 토대가 된다. 바로 대한민국의 국혼은 국가 정체성과 정통성이 결합해 만들어진 국가의 정신이다.

역사적으로 ‘중국’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 것은 상주시대부터 확인할 수 있는데, 이(夷)·만(蠻)·융(戎)·적(狄) 등 수많은 이민족이 존재했던 상황을 당시 문헌들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후 춘추전국시대부터 진(秦)·한(漢)시대에 걸쳐 중화사상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특히 전한(前漢)시대의 공양학(公羊學)에서 두드러지며 오행사상 등과 결합되면서 이론적으로 정립되고 기본적인 외형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국제적 왕조인 당나라 이후부터는 주변국에도 본격적인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으며 남송 시대 이후 발달한 성리학은 천자 중심의 질서를 더욱 강화시켰다.

중화사상은 중국인(한족·漢族) 특유의 자문화 중심주의 사상인데, 그 핵심은 중화 문명(중국)이 세계의 중심이고 그 문화적 역량이 어떠한 다른 문명보다도 우수하다고 믿으며, 다른 문명을 오랑캐로 낮잡아 보는 사상이다. 국가 명칭부터가 ‘중심 국가’라는 의미의 ‘중국’이다. 한족은 전통적으로 자신들 외의 다른 나라나 민족은 자신들과 구별지어 오랑캐로 여기고 멸시하는 성향이 강했다. 중원을 중심으로 이들을 각각 동이(東夷)·남만(南蠻)·북적(北狄)·서융(西戎)이라 칭했다.

동이(東夷)로 지칭되던 우리 민족을 한민족(韓民族) 또는 조선족(朝鮮族)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상고시대 우리 민족은 예족·맥족·한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세 종족이 모여 오늘날의 한국인이 형성된 것이다. 맥족의 한 부락이 발전하여 예족이 되고, 또 다른 한 부락이 발전하여 한족이 되었는데, 한족과 예족은 모두 맥족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조선·삼한·부여·고구려·신라 등 우리 민족의 고대국가가 모두 예맥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는 민족정신을 한복·한옥·한글과 같이 한민족의 사상이라는 의미에서 ‘한사상(韓思想)’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한사상은 한민족의 뿌리 사상으로 천·지·인 합일 사상을 바탕으로 ‘하나’라는 사유 구조로 발전했는데 이것은 ‘우리’라는 표현에서처럼 모두를 하나로 통합하는 일체 의식과 평등 의식으로 정립되었다. 이 한사상은 한 마디로 “조화를 통해 크게 하나된 ‘우리’의 이익을 추구하는 ‘홍익(弘益)’ 이념”이라고 압축할 수 있다. 그것이 현실에 나타날 때는 학문적 사유의 세계인 한철학(韓哲學), 인간 사회의 운영에 적용되는 홍익인간 사상, 한 차원 높은 신의 경지로 이르는 선(仙) 사상 등으로 나타난다.

몽고 침략기나 일제강점기 등 국난의 시기마다 홍익인간의 이념은 한민족을 지탱하는 힘이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광복 후 국가 건설의 청사진인 대한민국건국강령 제1장 총칙에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理化世界)의 이념을 집어넣었다.

홍익인간의 ‘익(益)’은 이익을 말하는 것으로 오늘날로 말하면 경제 개념이고, ‘홍(弘)’은 널리 이웃과 더불어라는 도덕 개념이다. 경제 개념이 있으므로 유·불·선의 동양사상을 뛰어 넘는다. 한손에는 도덕을 들고 다른 손에는 경제를 들고, 경제와 도덕을 두 축으로 삼아 인간 사회를 더불어 잘사는 사회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홍익인간 사상이 지향하는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고조선 정신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옛날의 역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상징이자 미래를 이끌어 갈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혼이 없으면 죽은 송장과 다를 바 없는데, 우리 민족에게 민족혼·민족정신의 핵심은 고조선의 홍익인간 정신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민족혼의 정수인 고조선 정신을 되찾는 일이다. 고조선이 물려준 위대한 고조선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고, 그래서 고조선은 우리에게 더욱 값진 의미가 있는 것이다. 반만 년 전에 세운 나라가 국가·민족·역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경우는 세계사에서 거의 유례가 없다. 한반도 안으로 위축된 오늘의 현실을 개탄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민족의 위대성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고조선의 강역은 중국의 동북부와 만주·한반도를 포함하고 있었고, 당시 수도는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 요서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의 역사관을 국토 중심에서 민족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고조선과 그 이전의 환인(桓因)·환웅(桓雄)을 선조로 하는 후예 민족의 역사는 모두 우리 역사라는 개념으로 역사적인 시대를 상고사와 고대사로 확장하고, 역사의 강역을 한반도에서 중원 대륙으로 넓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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