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찬종 소장(이삭애견훈련소/이웅종 동물매개치료센터)
이 말을 듣고 나서 제일 먼저 생각난 영화가 바로 ‘마견(White Dog)’이란 작품이다.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개를 주제로 한 영화중에서도 손꼽을 수 있는 문제작이며(최고의 문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의 훈련을 주제로 한 영화중에서는 가장 최고의 작품일 것이라 생각한다.
어느 정도의 문제작이냐면, 원작은 프랑스 작가 로멩 가리가 쓴 소설(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음)이다. 1982년 사뮤엘 퓰러 감독 작(作)으로, 영화음악은 서부영화로 잘 알려진 엔니오 모리코네가 담당했다.
제작 이후 작품을 둘러싼 논란으로 수년간 상영 보류되었고, 상영 이후 현재까지 가정용 홈비디오 출시 허가가 나오지 않았다.
인종차별주의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미국으로서는 영화 ‘마견(White Dog)’에 대해서는 불편하고 거북한 감정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당시로서는(현재까지도) 너무 파격적인 내용이었고, 개가 등장하는 영화치고는 잔인한 영화였다.
줄거리의 대부분은 개를 훈련(교정이라는 표현이 더 적확할 것이다)시키는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화이트 도그의 리얼한 연기와 단순하면서 우직하게 끌고 나가는 사뮤엘 퓰러 감독의 연출의 힘은 영화 화이트 도그를 문제작의 반열로 올려놓기 충분했다.
흑인을 죽이는 개
100여 년 전 아직 미국 땅에 노예제도가 존재하던 시절 백인들은 도망치는 노예들을 추적하기 위한 개들을 키웠다. 이 개들은 오로지 흑인노예만을 추격하고, 물어뜯었다. 바로 화이트 도그(White Dog)의 등장이다.

▲ “영화 ‘마견(White Dog)’의 마지막은 비극과 희극이 오묘하게 교차된, 아니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마무리 된다. 그러나 그 반전은 인종차별주의가 뿌리 깊은 그 어딘가에 숨어 있는 미국과 미국인들의 가슴에 불편한 그 ‘무엇’을 남겨주고 있다” (본문 중에서) [사진=필자제공]
남북전쟁이 끝나고 흑인 노예가 해방 됐지만, 일부 인종주의자들은 흑인을 추격하고 공격하기 위한 화이트 도그들을 계속해 만들어 냈다. 아니, 더 철저하게 만들어 냈다. 전쟁 전의 화이트 도그들은 추격에 주안점을 뒀지만, 전쟁 후의 화이트 도그들은 오로지 하나의 목적, 바로 흑인들을 물어뜯어 죽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평소에는 순한 양처럼 사람들을 잘 따르지만, 일단 흑인만 나타났다하면 사정없이 공격하고 물어뜯는 화이트 도그. 이들은 어째서 흑인들을 공격했던 걸까? 비밀은 그 훈련방법에 있었다.

▲ “영화상에서 키스는 화이트 도그를 붙잡아 놓고는 끝이 없는 인내력을 발휘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무한반복, 끝이 없어 보이는 훈련의 이면에는 화이트 도그에 대한 애증이 숨겨져 있다” (본문 중에서) [사진=필자제공]
어린 시절부터 흑인들에게 학대받은 기억을 가진 화이트 도그는 그 기억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흑인들에 대한 증오심을 불태우게 되고(그렇지 않은 게 더 이상하겠지만), 성견이 된 이후에는 흑인들만 보면 반사적으로 공격하게 된다.
화이트 도그(White Dog) 개 훈련의 기본을 보여주다
영화 ‘마견(White Dog)’에서 화이트 도그로 등장한 개는 흰색 저먼 셰퍼드(German Shepherd)였다. 영화의 내용은 단순한데, 차를 몰고 가다 우연히 화이트 도그를 치게 된 주인공 줄리는 이 개를 집으로 데려오게 된다. 때마침 줄리의 집에 침입한 강도를 물리친 화이트 도그! 줄리는 이 화이트 도그에게 반하게 되고, 결국 키우기로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동료 여배우를 물어뜯는 걸 보면서 생각을 달리 하게 된다. 결국 맹수를 조련하는 노아의 방주(Noah's Ark)란 시설을 찾게 된다. 이곳에서 흑인 조련사 키스(Keys)를 만나게 된다. 흑인을 본 화이트 도그는 본능 그대로 키스에게 덤벼들게 되고, 조련사들이 다 거절한 화이트 도그를 키스는 맡겠다고 나선다.
5주 안에 교화시키지 못하면, 내가 직접 죽이겠다
이어지는 지루한 훈련!(밥을 굶기고, 흑인인 자신만 음식을 가져다주는 방식) 화이트 도그는 변화의 기미를 조금 보이는 것 같았지만, 결국 철창을 물어뜯고 탈출하게 된다. 그리곤 또다시 다른 흑인을 죽이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주인공 줄리는 이 개를 안락사 시키자고 말하게 된다. 그러나 키스는 자신이 무슨 수를 써서든 이 하얀 악마를 교정시키겠다고 줄리를 말린다. 또다시 이어지는 지루한 훈련, 훈련, 훈련…

▲ “영화 ‘마견(White Dog)’은 어쩌면 한국영화 ‘하울링(howling)’을 연상케 하는(화이트 도그가 30년 먼저 나왔지만) 느낌이 들지만 영화 내용은 완전 딴판이다. 사람을 죽이는 건 똑같지만 주제와 내용은 전혀 별개의 이야기다. 다만 이런 문제작이 버젓이 국내에 수입돼 공중파에서 방영됐다는 사실이 놀랍다” (본문 중에서) [사진=필자제공]
화이트 도그(White Dog)는 지루할 정도로 묵직하고 꿋꿋하게 개를 훈련시키는, 아니 교정시키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영화상에서의 이런 훈련 모습은 미국의 고질적인 인종차별주의에 맞서는 깨어있는 사람들의 ‘노력’을 은유적으로(혹은 직접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그 훈련방식만을 놓고 보자면 개 훈련의 모든 걸 보여주고 있다.
인내력, 무한반복, 애정
영화상에서 키스는 화이트 도그를 붙잡아 놓고는 끝이 없는 인내력을 발휘한다.(사람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무한반복, 끝이 없어 보이는 훈련의 이면에는 화이트 도그에 대한 애증이 숨겨져 있었다. 미워하는 만큼 사랑한다고 해야 할까?
개에 대한 열정이 없다면, 이런 훈련은 처음부터 성립되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행동을 보이는 개들을 어떻게 교정시켜야 하는지 그 기본을 제대로 보여준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물론 사람을 죽이는 극단적인 행동을 한다면 분명 다른 ‘조치’가 취해져야겠지만 말이다).
비극 혹은 희극?
영화의 마지막은 비극과 희극이 오묘하게 교차된, 아니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마무리 된다. 그러나 그 반전은 인종차별주의가 뿌리 깊은 그 어딘가에 숨어 있는 미국과 미국인들의 가슴에 불편한 그 ‘무엇’을 남겨주고 있다. 이 덕분인지 영화 화이트 도그(White Dog)는 쉬쉬되고 있는지도 모른다.(이런 문제작이 버젓이 국내에 수입돼 공중파에서 방영됐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 영화는 지루할 정도로 묵직하고 꿋꿋하게 개를 훈련시키는, 아니 교정시키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사진=필자제공]
내용 자체는 묵직하고 충격적이라 할 수 있지만 영화 내내 보여주는 개를 훈련시키는 장면과 그 내용은 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 훈련시켜야 하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애견과의 행복한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는 애견인들에게는 불편한 영화일수도 있겠지만, 개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볼 ‘무언가’를 말해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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