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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공작원 김동식 회고록-죽기 위해 살아야 하는 운명
[평양에서 왔습니다] <28> 7개월 특공 훈련 겪어 보니… 김일성 항일 역사는 가짜
김동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3-27 06:25:00
김동식 前남파공작원‧대북전략컨설팅 대표
 
처음으로 먹어 본 카레라이스가 가래밥인 줄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내가 맹장염 수술을 위해 입원했던 ‘915병원은 대남요원 전용 병원이다. 병원 창설 연도는 알 수 없으나 915일에 창설되었다고 하여 ‘915연락소또는 ‘915병원이라고 한다. 평양시 형제산구역 학산리에 위치하고 있다.
 
915병원은 대남요원 전용 병원답게 남한이나 해외에 파견되는 현직 공작원들은 물론 대남 침투 시 안내해 주는 중앙당 작전부 산하 연락소 현역 전투원들과 함께 김정일정치군사대학 학생들도 입원하거나 진료를 받는다.
 
따라서 915병원은 각자의 보안 유지를 위해 입원실이 모두 1인실로 되어 있고, 식사도 각자 입원실에서 하게 되어 있다. 현직 공작원이나 전투원들의 식비와 수준을 감안하여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김정일정치군사대학보다 식사의 질이 높다.
 
한번은 요리사가 쟁반에 밥과 반찬을 가져다주면서 한쪽 옆 공기에 담은 노란색 소스를 가리키며 가래라고 소개하고, 밥을 가래에 잘 섞어 먹으면 맛있다는 얘기도 했다. 그런데 가래라고 한 소스의 냄새를 맡아 보니 한약 냄새가 진하게 났다. 그래서 나는 정말 그 소스가 가래나무 열매로 만든 소스인 줄 알았다.
 
가래는 호두와 생김새도 같고 열매도 거의 비슷한 촌간이라고 보면 된다. 복숭아처럼 생긴 가래나무 열매의 과육을 칼로 베어 낸 다음 그것을 찧어서 흐르는 개울물에 풀어 넣으면 작은 물고기가 취해서 물 위에 떠오를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가래나무 열매 과육의 냄새는 한약 냄새와 거의 같다. 요리사가 가래라며 가져다준 소스의 냄새와도 유사했다. 그래서 나는 정말 요리사가 가져다준 소스가 카레가 아니라 가래인줄 알았다. 카레라이스가 아니라 가래밥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한 나의 오해는 대학을 졸업한 후 공작원 초대소에서 생활하면서 요리사들이 초콜릿처럼 생긴 일본 카레의 원료를 보여 주면서 설명을 해 주어 비로소 풀렸다.
 
대동강 도하에 이어 진행된 천리 강행군
 
대동강 도하 훈련은 대동강의 중류 지역인 남포시 대안에서 평양시 강남군까지 수영해서 건너가는 방식으로 했다. 11월 초였음에도 도하 훈련하는 날은 유별나게 기온도 영하로 내려가 상당히 추웠다. 강폭은 4가량 되는 곳이었고, 정조(停潮) 시간이라고 하지만 썰물 시간대여서 강물의 흐름이 어느 정도 있을 때였다. 그래서 강을 직선으로 건너지 못하고 하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방식으로 거의 6이상 거리를 수영해 건너가느라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거기에다 나는 30이상 되는 내 장비와 함께 6개월 전에 쇄골이 부러졌던 친구 김철을 도와준다며 그의 장비까지 넘겨받아 60이상 되는 장비를 어깨에 멘 상태에서 그 친구까지 끌고 강을 건너야 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보다 대동강을 건너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고 고생도 엄청했다. 차가운 물속에 오래 있다 보니 마지막에는 몸이 굳어지고 발에 쥐가 올라 물속으로 가라앉기 직전까지 갔었다.
 
그날 우리 소대원 박정철은 대동강을 건너간 다음 갑자기 긴장이 풀려서인지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등 쇼크 상태에 빠져 구조 호흡과 구급치료를 받고서야 겨우 소생하기도 했다.
 
대동강 도하를 성공적으로 마친 우리는 곧바로 1500리 강행군 훈련에 들어갔다. 11월 초~중순에 13일에 걸쳐 진행된 1500리 강행군 훈련은 평양시와 황해북도·강원도 등 3개 지역에서 실시되었다.
 
대동강 도하 이후 평양시 강남군으로부터 시작된 1500리 강행군 훈련은 평양시 중화군과 상원군을 거쳐 황해북도 연산군·수안군·곡산군·신평군 등을 지나 강원도 법동군의 마식령까지 갔다가 다시 평양시 상원군까지 되돌아오는 긴 노정이었다. 당시에는 산악으로만 하루에 평균 150(60km)씩 걸었다. 야간에만 행군했다. 어떤 날에는 하룻밤 사이에 230(90km) 거리를 행군한 적도 있었다.
 
황해북도와 강원도 일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악지대로서 산세가 험하고 경사가 심해 오르고 내리는 데 무척 힘들었다. 거기에다 건전지(밧데리)까지 부족해 어떤 날 밤에는 환한 조명만 있으면 얼마든지 내려갈 수 있는 절벽도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아 내려가지 못하고, 그 위에서 밤을 꼬박 새운 적도 있다. 밤에 주로 행군하고 새벽이나 아침 시간에 잠깐 잠을 잤는데, 그때가 초겨울이어서 자고 일어나면 배 위에 서리가 내려앉을 정도로 추위 때문에 고생도 정말 많이 했다.
 
특히 황해북도 신평군에 있는 대각산은 해발고도가 1400m 정도 되는 매우 험한 산이다. 이 산에 올라갔다 내려올 때는 더욱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그날은 산 정상에서 저녁 9시경에 출발했는데,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흐린 날씨에 비가 많이 오고 모두 단독으로 행동하라는 지시와 함께 지도와 손전등도 주지 않았다.
 
낮부터 내린 비가 밤까지 계속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경사가 급한 산비탈이 상당히 미끄러웠다. 당시 나는 대각산을 내려오다가 6m가량 되는 벼랑에서 미끄러졌지만 다행히 나뭇잎이 쌓여 있는 곳에 떨어져 큰 부상은 피할 수 있었다.
 
이렇게 7개월간 야외 훈련을 하면서 불현듯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우리는 먹을 것도 제대로 먹고 훈련하는데도 1개월 지나니까 허기지고 가을이 되니까 벌써 춥고 힘든데, 김일성이 15년간 만주 벌판에서 풍찬노숙하면서 일본군과 전투를 했다고? 그건 정말 새빨간 거짓말이다는 것이었다.
 
사격 명수가 되다
 
우리는 1500리 강행군을 마치고 대학으로 돌아와 2주간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듣고 12월 초에 또다시 특공대 전투 사격훈련을 하기 위해 평남 대동군에 있는 독좌저수지의 사격훈련장으로 나가 약 1개월간 실탄 사격훈련을 했다.
 
사격훈련 당시 사용한 무기는 북한군이 사용하는 자동보총(AK소총)과 북한제 권총(러시아 TT권총 모방)이었고 대전차무기인 발사관(RPG-7)과 체코제 기관권총으로도 사격훈련을 했다.
 
미국제 칼빈 소총은 물론 M1·M16 소총과 콜트권총 등도 적군(敵軍무기 성능 테스트 차원에서 몇 발씩 사격을 해 보았다. 당시 사격해 본 여러 종류의 무기 가운데 체코제 기관권총이 성능도 좋고, 크기에 비해 무게도 가볍고 명중률도 가장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격은 매일 실탄 200발 정도를 쏘았다. 한 번에 50발씩 소총과 권총 2정을 동시에 휴대하고 약 2km 구간을 달리면서 그 구간에 설치되어 있는 고정 목표와 이동 목표 등 여러 종류의 목표물에 서로 다른 자세로 사격하는 방법으로 했다.
 
나는 마지막에 진행된 사격 판정에서 AK소총은 100m 전방 표적지에 95, 권총 사격에서는 30m 전방 표적지에 97점을 명중해 최고 점수를 받았다.
 
사격훈련이 끝난 다음에 시간이 좀 남았다. 이때 교관의 허락을 받아 친구들을 데리고 산속에 들어가 남은 실탄으로 고라니와 꿩을 사냥하기도 했다.
 
원래 북한에서 사냥은 김씨 일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우리 훈련장은 아무도 못 들어오는 지역이라 교관만 눈감아 주면 사냥이 가능했다. 사냥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내가 가지고 갔던 체코제 기관권총으로 쏜 총알이 달아나는 고라니를 명중시켰다. 다른 친구도 1마리를 더 잡아 고라니 2마리로 탕을 끓여 소대원들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해서 특공대 전투사격 훈련이 끝났다. 훈련을 마무리하고 보니 나뿐만 아니라 소대원 모두가 명사수가 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 나는 사격 실력은 누가 실탄을 더 많이 쏴 보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 북한군의 일사불란한 군사훈련 장면. 연합뉴스
 
 
살아 남기 위해 익힌 앉아서 잠자는 방법
 
내가 대학 생활을 할 당시 강의실에선 2인용 책상을 3열로 배치하고 2명씩 같이 앉아 공부했다. 나는 2분대 소속이었고 키가 작은 편에 속했으므로 항상 가운데 열 맨 앞자리에 앉아서 공부했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4년 내내 교수님이 강의하는 교단 바로 앞에 짝꿍인 박명학과 같이 앉아 수업을 듣다 보니 가장 힘든 것이 수업 시간에 졸음이 올 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서는 1학년 때부터 야외 훈련에 나가면 보통 2~3, 길게는 4~6주 동안 훈련하는데 모든 훈련은 야간에만 실시된다는 특징이 있다.
 
저녁 식사 후 8시쯤 훈련이 시작되면 보통 새벽 2~3시에 끝난다. 교관에게 훈련 결과를 보고하면 4시가 지나고 간단히 야식을 먹은 후 잠자리에 들어 오전 11시경에 잠에서 깨어난다. 그러면 12~1시까지 점심을 먹고 교관으로부터 훈련 과제를 받아 지도연구를 하는 등 훈련 준비를 한 다음 저녁을 먹고 또다시 훈련에 돌입하는 방식으로 훈련이 진행된다.
 
이렇게 몇 주간 야간에만 훈련하다가 대학에 복귀하면 다시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들어야 한다. 야간 훈련하면서 신체 리듬이 야간에 맞추어져 있어서 대학에 돌아온 후 최소 1주일 정도는 강의 시간에 졸음이 오기 마련이다.
 
나 역시 아무리 소대장·중대장이라고 해도 다른 친구들처럼 강의실에 앉아 있으면 졸리거나 잠이 오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강의실 가운데 열 맨 앞, 그것도 교수님 바로 앞에 앉은 나로서는 노골적으로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잘 수도 없고 끄덕끄덕 졸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정말 힘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묘안으로 찾아낸 것이 의자에 앉은 채로 엎드리지도 않고 머리를 끄덕이지도 않고 자는 방법이었다. 말하자면 평소처럼 의자에 앉아 허리를 꼿꼿이 세운 상태에서 책을 보는 것처럼 머리만 약간 숙인 다음 그대로 눈을 감고 자는 방식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도 있는 것처럼 내가 터득한 방식대로 꼿꼿이 앉아서 고개만 숙이고 졸거나 잠을 잤는데 교수님으로부터 거의 지적받은 적이 없다. 이 방법을 지금도 비행기를 타고 장거리 출장이나 여행을 다닐 때 종종 써먹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장거리 비행이 남들보다 쉬운 것 같다.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다
 
※ 202111월 육군 현역으로 입대 후 대한민국 국민의 4대 의무 중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마친 아들과 내가 직접 나눈 대화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는 형식으로 본 연재의 각 회차 마무리를 대신하려 한다.
 
아들엄마는 아버지가 불러 주는 노래를 듣는 것이 좋다는 말을 자주 해요. 제 기억에 어릴 적 우리가 여행 다닐 때 차 안에서 듣던 곡들 대부분을 아버지가 알고 있었고 자주 따라 부르기도 했던 것 같은데, 북한에서는 한국 대중가요를 자유롭게 듣지 못한다고 들었어요. 아버지는 그 많은 한국 가요를 어떻게 알게 되신 거예요?
 
아버지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한국 대중가요는 북한에 있을 때 공작 교육을 받으면서 배운 거야. 남파 공작원들은 반드시 한국의 말과 문화를 완벽하게 숙지하는 적구화(敵區化) 교육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교육 과정은 한마디로 북한 사람을 남한 사람으로 만들기, 또는 평양 사람 서울 사람 만들기과정이야.
 
북한 사람인 내가 완벽하게 한국 사람처럼 되려면 한국의 말과 문화를 비롯해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정도의 지식과 상식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하는데, 노래도 마찬가지야. 결과적으로 내가 완벽한 한국 사람처럼 되자면 내 또래의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노래는 대체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적구화 교육과정에는 물론 초대소에서 생활할 때도 카세트 녹음기에 당시 유행하는 한국 노래 테이프를 하루종일 틀어 놓고 들으면서 가사와 곡을 익히고 따라 불러서 알고 있던 노래를 노래방에서 불렀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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