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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대학 시절 꿈이 소설가였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소비에트연방으로 불리던 미지의 세계로 유학을 떠나지만 않았어도 벌써 그 꿈을 이뤘을지도 모른다. 긴 유학 생활을 통해 공부에 치고 삶에 복무하느라 그의 꿈은 한없이 뒤로 밀려났다.
순탄치 않은 여정을 통해 작가는 이제야 독자 앞에 섰다. 장편소설 ‘라라의 랩소디’(양문출판사)는 맹세희(57) 작가에게 첫 출판이다.
작가는 “현지에서 러시아 문학과 러시아 예술을 접하면서 궁극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그들의 미학에 깊고 큰 감동을 받았다. 언젠가 인간과 인생과 신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지금 그 시기가 닥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시각에서 우리 사회 바라보고 싶었다”
‘라라의 랩소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모스크바’에는 소련 해체 이전 모스크바에서 공부하고 생활했던 작가의 경험이 곳곳에 녹아 있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스크바와 거기 모인 사람들의 분위기가 소설 읽는 재미를 준다.
작가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우리가 관통하고 있는 이 시대의 정치 상황과 깊은 연관이 있다.
“문화계에서 진지전이 있었다는 것은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진 공공연한 비밀이죠. 그런 시대가 이미 30년이라는 한 세대를 넘어 40년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는 일념으로 아스팔트로 뛰쳐나가기도 했다.
“보수는 꼴통, 진보는 빨갱이로 서로를 부르며 물어뜯고 물리는 가운데 우리 사회는 갈갈이 찢기고 상처를 입었습니다. 반론을 인정하지 않는 아주 교조적인 사회가 된 것이죠. 민주화를 외치던 사람들이 권력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는데 사회는 비민주적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그들이 외쳐온 것은 뭐지? 그리고 거기 동조해 같이 스크럼을 짜고 운동가를 불렀던 나는 또 뭐지? 이런 의문과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는 지금이야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워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그가 책을 쓰게 된 이유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원조 격인 소련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과 시대에 대해 성찰해 보고 싶어서였다.
에밀 졸라의 ‘나나’와 닥터지바고의 ‘라라’가 만나면
작가들은 소설을 쓸 때 주인공의 이름을 짓는 데 많은 공을 기울인다. 성명학이라는 분야도 있지만 이름은 작중인물의 정체성이면서 작가의 세계관을 축약해 드러낸다. ‘라라의 랩소디’의 주인공 ‘라라’는 어떻게 탄생하게 된 이름일까.
“러시아와 한국에서 공통으로 통할 수 있는 이름을 찾았어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의 여주인공 이름이 라라잖아요? 한국어로는 아름다울 나(娜)를 써서 ‘나나’였던 주인공 이름이 ‘라라’로 변경되는 과정이 소설에 나옵니다.”
작가는 라라라는 이름이 가진 운명과 그 이중성을 표현하고 싶었다.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의 소설 가운데 ‘나나’(1880)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나나’는 타고난 성적 매력으로 남성들을 파멸시키는 팜므파탈이죠. 졸라는 당시 프랑스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기 위해 여배우 나나를 활용했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작품을 구상할 때 에밀 졸라의 ‘나나’도 떠오르면서 닥터 지바고 속 ‘라라’의 운명과 성격을 더 많이 가진 주인공이 필요했다고 한다. 전준호라는 운동권 출신의 룸펜과 그의 폭력성에 저항하는 여자로서의 이름. 라라는 그렇게 탄생했다.
한편 작가는 남자 주인공의 이름에도 나름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차시훈이라는 이름은 다음 세대를 위한 가르침(時訓)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차도남의 이미지를 가진, 냉정하지만 따뜻한 남성의 이미지를 주고 싶었죠. 그런 사람이라야 여주인공 라라를 상대할 자격이 있으니까요.”
소설 ‘라라의 랩소디’의 원래 제목은 ‘모스크바 랩소디’였다. 작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무관하게 한국 사람들에게 모스크바라는 공간을 올바로 인식시켜 주고 싶었다.
“그러나 때가 때이니만큼 정치적인 소설로 읽힐 우려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목을 ‘라라의 랩소디’로 바꾸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모스크바’라는 부제를 달았죠. 제가 젊어서 깊은 인상을 가지고 보았던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 대한 오마주로서의 제목이기도 하고요.”
서울과 모스크바. 내 두 개의 고향
서울과 모스크바라는 쌍은 서울과 도쿄, 서울과 뉴욕과는 또 다른 거리감으로 묶인다. 도시 역사와 탄생 배경이 다르고 구성원도 다른 만큼 두 도시 간 차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이들 도시에 대해 작가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서울이 제가 태어나고 자란 첫 번째 고향이라면 모스크바는 저의 마음과 정신을 낳아준 제2의 고향입니다. 서구 사람들은 서울을 소울(soul)과 거의 동일하게 발음합니다. 저는 서울을 지구의 소울 ‘영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스크바의 어원을 ‘두뇌’라고 해석하는 사례도 있듯 저는 모스크바를 지구라는 별의 ‘두뇌’로 봅니다. 저만의 해석이지만 재밌지 않나요?”
작품 첫 장부터 마지막 에필로그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단어가 있다면 ‘운명’이라고 작가는 강조한다.
“책에도 썼지만 인생 혹은 운명이란 인간의 의지와 신(절대자)의 의지와의 변증법이라고 생각해요. 삶에는 인간의 의지만으로 설명되거나 해석되지 않는 요소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봅니다. 그 절대자 혹은 신의 존재 방식이 너무 궁금해서 그에 대한 사유를 작품 곳곳에 풀어놓았습니다. 사주, 궁합, 점성술사 등 운명에 대한 여러 방식의 접근법들이 언급되는 건 그 때문입니다.”
작가에 의하면 현재의 모든 시간과 공간 속에 신은 존재한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와 신의 의지가 평행선을 달리거나, 교차하거나 겹치면서 이뤄진다.
라라의 랩소디를 통해 그는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정확히 말하면 해야 할 이야기를 했다. 작가는 “오늘은 어제의 발자국의 총합이고 미래를 예측하는 시금석이기 때문에 현 세대에게 이전 세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무엇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일방적인 시각이 아닌 쌍방의 시각으로 조명하려고 했습니다. 제대로 된 정확한 현실 인식을 갖기 위해서는 과거를 진실의 눈으로 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우리가 겪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을 후배 세대에게 넘겨주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젊은 독자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또 4050 세대도 회고의 시선으로 반추할 기회가 되길 원한다고 했다. 그런 한편 6070 이상 세대에게는 다소 부담스런 스토리일 수 있다고 고백했다.
“소설은 도덕 교과서가 아닌 만큼 책이 이국 배경의 한국 사람 이야기, 이웃 사회의 이야기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작가는 지금 일간지 기자로 근무하면서 다음 작품을 구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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