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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두 번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분들로부터 자신들이 암에 걸렸다는 고백을 받았다. 그들의 변화란 게 그저 희끗해진 머리칼과 몇 가닥 늘어난 주름밖에 없는 것 같았다. 한 분은 내 또래이고 한 분은 나보다 조금 연상이다. 내 또래 지인은 내가 수술받은 것과 꼭 같은 병이어서 무언가 정보라도 드릴 수 있었지만, 다른 분의 질환은 좀 생소한 것이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놀라운 것은 암은 암 대로 자신에게 특화된 나이와 성별을 챙겨서 노크한다는 점이다.
가을이라 단풍이 들고 낙엽이 되는 시기 아닌가. 나무의 종류를 따라 잎이 황화되는 시기가 조금씩 다르니 우리의 노화와 건강 변화도 자연대로인 것 같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마음과 몸의 변화가 오지만 일상에서 그걸 느끼지 못하고 살 뿐이다. 아주 작은 단서들이 우리의 황화를 알려 주지만 세상 속 변화와 경치에 취해서 붙잡지 못하기 일쑤다. 앞으로 검사하고 파헤치고 시술하고 투약하느라 지치고 실망하고 낙심하고 걱정하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어쩌면 모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초기에 큰 병을 알아냈다고 무엇이 그리 달라질까? 두 분 다 세상 치열하게 살았고 건강 만만하게 살았고 인생 숙제도 훌륭하게 해낸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파리가 조금씩 물들어가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살았을 것이다. 건강검진이 주범이다. 검진을 받지 않았다면 환자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런 부질없는 생각도 해본다.
자연스레 나이 먹어가는 사람들에게, ‘잠깐!’하고 검사대 위로 올리는 것이 건강검진이다. 그 몇 시간을 거치면서 잠재된 낙엽들을 수색한다. 지금 잘라내는 것이 맞다고 한다. 이것들을 버려두면 나무 전체가, 모든 잎이 버려질 것이라고 하며 특정한 개입이 들어간다. 사실 건강검진은 수십 년 자신의 습관에 대한 청구서다.
무엇을 먹고 어떤 환경에서 살았는지, 몸과 마음은 어떻게 활용했는지 성적을 매기는 셈이다. 궁금하긴 하다. 정기적으로 시험을 보면 앞으로 성적이 오를 것 같기도 하다. 인생을 즐기는 요즘 세상에는 어떡하면 건강우등생, 건강장학생이 되는지를 가르치는, 비법을 전수하는 ‘스승들’도 쌔고 쌨다. 그분들의 조언을 듣다 보면 우리 모두 저 유명한 팽조(彭祖)가 될 것 같다.
그는 중국 고대 요임금과 순임금 시기를 산 800세의 장수인이다. 도교적 장수 신화의 대표 인물로서 중국에서 ‘장수의 상징’으로 신격화됐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제3부에는 죽지 않는 인간들, 스트럴드브럭(Struldbrugs)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늙기는 하지만 죽지는 않는 이들은 ‘돌연변이’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들의 삶은 노쇠하면서 기억력과 언어 능력이 거의 사라지고, 즐거움, 감정, 욕망도 없어 피로와 냉소만 남는다. 하지만 죽지는 못하니 가엾은 존재로 묘사된다.
나무로 치면 황화된 잎을 단 채로 가을 겨울을 지내는 셈이다. 몸속에 수분을 지니고 가지에 잎을 매단 채로 겨울을 나는 건 나무에게 형벌이다. 수분은 얼음이 되고 잎에 쌓인 눈은 가지를 부러뜨린다. 심하면 뿌리까지 뽑힐 수 있다. 살아도 산 게 아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인간이 나이 들면 질병을 감사히 여겨야 할까? 영겁의 고통을 미연에 방지하고 생명의 다음 단계로 이끄는 안내자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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