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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12일간 이어진 이스라엘과의 무력 충돌에 대해 “이겼다”는 내러티브를 펼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휴전, 전쟁 끝” 선언을 공식 성명 없이 응하는 형태로 수용해 사실상 이란의 ‘백기투항’으로 풀이되는 가운데 체제 유지 프로파간다를 시작한 셈이다. 현지 반(半)관영 메흐르 통신에 따르면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가 24일(현지시간) 성명에서 “적(이스라엘)이 후회 속에 패배를 받아들여 일방적으로 침략을 멈추게 만든 승리” “최고지도자 명령 대로 적들의 침략에 용맹하게 맞서 모든 악을 분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SNSC는 “마지막으로 카타르의 알우데이드 미군기지와 이스라엘 전역에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적의 어떠한 침략 행위에도 후회를 불러일으킬 단호한 대응에 나설 대비를 갖췄다”고 덧붙였다. 이란 국영 파르스TV는 “휴전을 공식 확인하진 않았다”면서도 SNSC 이번 성명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를 이스라엘이 확인한 이후 나온 것”이라며 에둘러 표현했다. 이날 앞서 압바스 아락치 외무장관은 엑스(X·옛 트위터)로 “휴전이나 군사작전 중단 관련 ‘합의’가 없었다”면서도 “이스라엘이 오전 4시(테헤란 시각)까지 ‘불법 침략’을 중단하면 대응을 계속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휴전 공지 약 3시간 뒤에 나온 반응이었다.
AP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란 내 보도 행태와 인터넷 차단의 피해·혼란과 목적에 주목했으며,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선 이스라엘의 공격이 이란 군부와 핵시설에 심각한 타격을 줬음에도 현지 매체들이 “피해 덮기에 급급하다”고 꼬집었다. 유로뉴스에선 “이란 정부가 ‘정의로운 평화적 저항’ 이미지에 집중”하는 점, “사실을 왜곡한 승리 서사” “‘이스라엘=악·이란=영웅’ 식의 구도” 등을 지적했다. 또 이란 국영 TV가 레고 스타일의 애니메이션을 통해 “이란-이스라엘 12일 전쟁 승리”를 선전 중이라는 소식이 24일 미 뉴욕포스트(NY)·AP 등에서 나왔다.
19일 국영 타스님통신 온라인 공개 후 24일 TV 방영된 이 애니메이션은 이란 측 보복에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겁에 질려 트럼프와 통화하는 광경을 보여준다. 대(對)이스라엘 추가 공습 광경과 불타는 이스라엘 국기가 비쳐진 후 이스라엘의 스파이 스릴러 ‘테헤란’ 주제곡이 깔리며 이란·레바논·이라크·예멘·팔레스타인 (시아파) 군중이 축하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시즌3까지 나온 드라마 ‘테헤란’은 이란계 유대인이자 모사드 요원인 주인공이 이란 수도에 잠입해 핵시설 사이버 공격을 시도하는 이야기다. 에미상(2021) 최우수 드라마상 수상 등 비평가들로부터 ‘이스라엘 드라마의 새 지평’으로 평가받았으나 이란 당국에선 “신정체제에 대한 악의적 묘사”라며 반발한 바 있다.
높은 자존심과 현실이 충돌할 때의 심적 고통을 견디는 방식에 ‘정신승리’가 있다. 자의식이 높을수록 현실이 비참할수록 심해지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란의 정신승리는 역사가 유구하다. 비슷한 현상을 중국이 19세기 중반 아편전쟁 이후 겪었다면 이란은 7세기부터 체험한 셈이다. 아랍의 침공으로 이슬람화됐고 아랍문자까지 쓰게 됐으나 아랍과 이란은 인종적 언어적 계통이 다르다. 아랍에 복속된 이후에도 이란은 고유한 언어·문화·역사 의식을 고수했다.
다만 이란에겐 페르시아제국 후예로서의 드높은 자긍심, 20세기 초까지 부족 단계에 머물며 약탈로 먹고살던 아랍에 대한 정신적 우월감이 강한 만큼 이들에게 정복 당한 상처가 깊다. 이란은 이를 배경으로 이슬람 비주류였던 시아파(전체 이슬람의 10~15%)의 맹주로서 순교를 강조한 근본주의를 발전시킨 셈이다. 이런 경향이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강화됐고 그게 핵개발 시도로 이어진다. 핵 추구 명분부터가 ‘(타락한 서구문명의 상징인) 미국·이스라엘 심판’ ‘이스라엘을 지도상에서 지워버리기’였다.
현대 이란 사회의 대표적 ‘정신 승리’ 예가 혁명 이후 것만 다섯 차례 정도나 된다. 8년간 이어진 이라크와의 전쟁이 1988년 종결될 때 굴욕적인 유엔 결의안 598을 받아들인 것을 우선 들 수 있다. 당시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독배를 들이킨 것”이라며 항복이 아닌 신성한 자기희생으로 포장했다. 예수가 십가자의 길을 앞두고 ‘이 쓴 잔을 피하게 해달라’ 기도했다 해서 중동 및 서구 문화권에서 통용돼 온 비유다. 이 상황은 이란 내부적으론 ‘전략적 인내’로 설명됐다.
또한 2009년 대선(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재선) 부정 논란으로 역대 최대 시위(녹색혁명)가 벌어지자 이란 당국은 이들을 “외세에 조종된 반역자”로 규정해 진압한 후 ‘이슬람 신정체제의 위대한 승리’로 선전했다. 2020년 가셈 솔레이마니를 미국이 표적 살해했을 때 이란은 이라크 주둔 미군 기지에 미사일 수십 발을 발사한 후 “미군 80명을 죽였다”며 ‘미국을 응징한 승리’로 크게 보도했으나 미국 측 발표로는 ‘사상자 없음’이었다.
핵 개발 의혹에 의한 국제 제재 강화 시기 역시 기억할 만하다, 특히 이란핵합의(JCPOA) 직전인 2011~2015년 국제사회가 전방위적 경제 제재를 실행하자 이란 매체와 지도층이 “산업 자주화 계기”라고 해석했으며 2022년 히잡 시위는 “서방의 공작”으로 간주했다. 이번 사태를 포함한 모든 사례에 관통한 논리로 ‘굴복·양보하지 않는다’ ‘외부 압력이 우리를 단결시킨다’ ‘자발적 희생이란 신의 뜻에 따른 위대한 결단이다’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슬람혁명 이래 순교와 저항의 미덕을 국가정체성으로 끌어올린 정치문화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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