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정치’의 특징은 ‘자충수’다. 범실(凡失)만 안 해도 본전은 되는데 움직였다 하면 실점이다.
첫째는 윤석열 대통령 본인의 범실, 둘째는 부인 김건희 여사의 범실이다. 이재명의 사법 문제는 그 자체로서 치명적인데 대통령 부부가 범실이 잦다 보니 이재명은 손 안 대고도 코 푸는 식이 되었다. 왜 뻔히 보이는 악수(惡手)·악재 생산이 제어되지 않고 끊이질 않는지 미스테리를 느낄 정도다.
윤 대통령은 시스템보다 측근 정치에 의존해 정권 출범 초부터 소위 ‘윤핵관’ 파동으로 인기하락을 자초했다. 장재원·권성동 등은 처음부터 자중지란으로 빈축을 샀고 이철규·조정훈 등은 계속적인 말썽 생산으로 정권에 타격을 주고 있다. 윤 대통령은 작년 3.8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때도 가만히 놔두면 될 것을 안철수·나경원을 끌어내리는 등 굳이 손을 대서 허약한 김기현 체제를 만들어 냈다. 그런 ‘예스맨’ 구조하에서 10.11 강서구청장 선거 참패가 나왔다.
4.10 총선의 참패도 대부분의 악재가 ‘용산’ 측에서 나왔다. 기자회견을 장기간 거부하는 등 끈질긴 ‘불통’,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 대란, 의대 증원 2000명 고수 연설, 김 여사 문제 방치 등등이 그것이다.
특히 김 여사와 최재영 목사의 1년 10개월간 ‘카톡 사건’은 무수한 가십거리와 유언비어를 생산·유포하면서 선거와 정권에 치명상을 입혔다. 디올 명품백으로 통칭되는 이 사건은 최 목사와 급진과격 좌파 유튜버들이 1년 이상 묵혀 두었다가 총선을 앞두고 폭로하기 시작함으로써 최악의 선거 악재임이 분명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그냥 방치하여 총선 참패를 자초한 것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상황 판단의 오류인지 통제 불능 상태의 시스템 고장인지, 어느 쪽이든 큰일이다.
이 사건은 지금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의 탄핵 군불 때기 청문회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죄의 유무를 떠나 대통령 부부를 희롱하는 듯한 문답이 오가며 이목을 끌었다. 심지어 김 여사가 왜 새벽 3시에도 최 목사와 카톡을 했나부터 시작해 김 여사의 하소연과 정권의 내밀한 사항까지 실토한 카톡 내용이 현장 방송을 통해 온 국민에게 전파되는 등 건국 이래 처음 보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급기야 김 여사가 마음대로 국정에 손대고 있다는 야당의 주장과 소문들이 증폭되는 바람에 최순실 국정 농단의 기억을 소환하고 있다.
정윤회 문건 보도로 시작된 최순실 사건은 권력서열 1위가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가 박근혜라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소문이 눈덩이처럼 불려지다가 2016년 10월24일 JTBC가 최순실 국정 개입 사례를 보도하자 박근혜 지지율이 17%(한국갤럽)로 내려갔고 11월에는 5%까지 급락하여 통제 불능의 탄핵 사태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해병대 채상병사망사건만 해도 그렇다. 수해지구에서 인명구조에 나갔다가 일등병이 실족사한 일인데 거기서 왜 대통령과 그 부인의 이름이 나오나! 만기친람도 유분수지. 무슨 부탁을 받더라도 안 될 일이면 ‘어렵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대통령의 힘이 세다는 것은 그렇게 증명하지 않아도 다 안다.
이번 국힘 대표 경선에서도 왜 ‘윤심’이란 말이 나오나. 가만히 놔두면 순리대로 잘 굴러갈 일이다. 외교·안보 그리고 그 방대한 행정부 관리 업무만 해도 눈코 뜰 새가 없을 텐데 왜 윤심이 들어와 심지어 ‘자폭 대회’라는 최악의 사태를 만드나. 아닌 말로 윤심이 이겼다면 당심 이탈로 진짜 탄핵을 당할 뻔했다. 이런 극도의 위험이 뻔히 보이는데도 겁도 없이 밀어붙이는 진짜 이유와 정체에 대한 규명과 대책이 없다면 2027년 대선의 결과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차기 대선에서 지면 그 참혹할 결과만은 미리 각오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때는 약과다.
뻔히 보이는 가까운 장래의 험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이 불가사의한 국정 운영 시스템의 고장을 수리해야 한다. 한심한 것은 갑론을박 난상토론이 가능한 전당대회 판이 깔렸을 때 용산 제2부속실과 특별감찰관 같은 문제가 깊이 있게 거론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뻔한 총선 참패 원인이 어쩌고저쩌고, 이재명 구속 못시킨 책임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하나마나한 시비 걸기로 그런 찬스를 걷어차고 말았으니 무능인가 운명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이재명은 수령급 최고존엄 1인 체제를 굳히고 인격 파탄 지경에 이른 싸움닭들을 요소요소에 배치하여 파죽지세의 상륙작전을 감행하고 있는데도 임진왜란 전야처럼 태평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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